한국농인LGBT+는 통역’업체’가 아니다

한국농인LGBT+는 통역’업체’가 아니다

교차성에 기반한 인권활동으로서의 통역에 대해


우리는 종종 농접근권 외부 연대 활동에 참여하며 “한농퀴는 수어통역 업체인가요?”, “농인 단체인지, 성소수자 단체인지 하나만 해라”, “같은 인권판인데 우리에게 너무 비판적인 것 아니냐”는 말을 듣곤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정체성과 역할은 한 가지만으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농접근권 활동만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가 알듯 교차적인 정체성에서 비롯된 차별은 N+N이 아니라 N의 제곱으로 불어납니다. 농인여성, 농인이주민, 장애여성처럼 말이죠. 우리는 농인권단체이자 성소수자, 수어사용자라는 정체성으로 활동을 이어나가며 한국어 중심의 인권·연대활동 현장을 비판적으로 접근해서 농인 및 농인성소수자가 활동할 수 있도록 접근권을 고민하고 실천하는 인권단체입니다.

우리의 통역은 단순 통역 기술이 아니라 인권활동입니다. 일반적인 ‘업체’는 통역 의뢰·수행 및 비용 지급으로 프로세스가 마무리됩니다. 때로는 사전 정보 제공을 위한 수준의 회의를 하기도 하죠. 그러나 통역은 단순 기술 제공으로는 안전하지도 충분하지도 않습니다. 언어는 중립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말에는 발화자의 관점·정체성·맥락이 스며 있고, 소수자 의제일수록 이 맥락을 오역·삭제하지 않아야 합니다.

또한 접근권은 통역 배치만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무대·좌석·조명·카메라·화면 배치, 큐시트·대본, 안내물·홍보물의 용어까지, 전체가 수어와 농문화에 맞춰져야 비로소 권리가 보장됩니다. 농접근권을 준비하는 과정에 농당사자 참여도 필수입니다. 농인이 기획·의사결정에 참여하지 않으면 내용은 전달된다고 하더라도 농접근권이 보장된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단순한 통역 인력 공급자가 아니라 언어·현장·제도를 바꾸는 연대단체입니다.

통역활동가란 단어가 낯설게 느껴지실텐데요, 맥락·정체성·인권을 몸으로 경험해서 가지고 있는 현장 활동가입니다. 통역활동가는 언어를 바꾸는 사람에 그치지 않고, 발화의 의도·감정·사회적 맥락을 해석해 차별과 오해를 방지하고, 공동체의 경험과 정체성을 존중하며, 현장의 농접근권을 당사자와의 소통과 인권의 관점으로 접근권을 보장합니다. 우리는 “전에 비하면 지금은 많이 좋아진거야”, “그렇게 원하는 것 다 말하면 다음에는 기회가 사라져”, “좋게 좋게 이야기해야지지”와 같이 인권을 마치 일부 양보할 수 있는 것처럼 말하는 것에 반대합니다.

현대 통역학에서는 통역이 ‘완전한 중립적 매개’라는 허황된 생각을 이제 버려야 한다고 말합니다. 마찬가지로, 무엇을 어떻게 옮길지 선택하는 순간, 통역의 해석에 대한 책임은 통역사에게 있습니다. 예컨대 어느 퀴어문화축제의 통역사에게 수어통역에 대해 문제를 제시했더니, “나에게 말하지 말고 농아인협회에게 말해라”라고 말하며 보인 책임감 없는 태도는 분명 잘못된 것입니다.

그래서 통역이란 소극적 행위가 아니라 농접근권을 실천하기 위한 적극적인 행위여야 합니다. 이것이 한국농인LGBT+가 통역사가 아닌 통역활동가라고 부르는 이유입니다.

예전에 한 성소수자 관련 보도에서 성소수자 혐오적인 수어가 사용된 적이 있습니다. 한국어 음성에서는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표현이 사용되지 않았지만, 수어통역에서는 혐오수어가 삽입되어 전달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맥락과 윤리를 무시하는 통역은 농인성소수자에 대한 2차 가해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누가 통역하느냐’를 매우 중요하게 봅니다. 통역활동가가 아닌 사람, 더 나아가 혐오와 편견을 드러낸 이에게 인권·성소수자 의제 통역을 맡기는 건 위험합니다. 해당 의제와 공동체에 대한 이해·경험·윤리 없이 특정 언어를 ‘안다’는 이유만으로 맡길 수는 없습니다.

한국농인LGBT+는 수어통역 업체가 아닌 농인성소수자 인권단체로, 언어와 현장을 바꾸는 통역활동와 더불어 농접근권도 함께 만들어가는 단체입니다. 우리는 통역을 통해 존엄을 지키고 매 현장에서 농접근권에 대해 고민해나가며, 불합리한 제도는 반대하고 인권의 시선으로 제도가 만들어질 수 있도록 활동합니다.

그래서 앞으로 한국농인LGBT+에 농접근권을 함께 만들자고 제안주실 땐, 마치 통역 업체에 연락해서 통역을 부르는 것이 아닌 우리의 활동 지점을 이해하고 동참·연대하는 마음으로 함께 해주시길 기대해봅니다. 농인성소수자도 ‘나중’이 아닌 ‘지금’이 될 수 있도록 많은 지지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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